2009년 08월 17일
자기소개 단상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 생길 때마다 도대체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작 써야 하는 글은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려다가 자기소개 자체에 대한 고찰을 하는 글을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완전히 글을 새로 써야 하게 되었는데 막상 써 놓은 것은 나중에 좀 더 수정하고 덧붙여 보려고 우선 (번역하여) 이글루에 저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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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해 소개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까? 관찰자인 나 자신이 동시에 나를 관찰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심지어 가능한 일인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 나는 취미로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저것을 싫어한다, 등등. 그런데 이 방식은 무척 간접적으로만 자신을 표현한다. 내가 콜라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나는 콜라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상대를 만나면 나는 “음 당신은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이군요.”라고 대답하는 동어반복적 대화를 진행해야 하는가?
다른 한 가지 방식은 과거의 자신을 서술하는 것이다. 저는 어디 출신이고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무엇을 했었어요. 그런데 과거의 자신을 그렇게 서술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과 다른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나에 대한 서술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벽한 동일성을 갖고 있다고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나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단초만을 제공하지 그것으로 완벽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장 훌륭하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나를 외화시킨 무언가를 통해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다시 말해 외부 대상에 나를 투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이미 관찰하는 나와 투영된 나는 다른 자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외화된 나와 관찰하는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연결망은 단지 두 자아를 타자로서 배치하지 않는다. 즉 관찰하는 자아는 외화된 자아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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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해 소개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까? 관찰자인 나 자신이 동시에 나를 관찰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심지어 가능한 일인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 나는 취미로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저것을 싫어한다, 등등. 그런데 이 방식은 무척 간접적으로만 자신을 표현한다. 내가 콜라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나는 콜라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상대를 만나면 나는 “음 당신은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이군요.”라고 대답하는 동어반복적 대화를 진행해야 하는가?
다른 한 가지 방식은 과거의 자신을 서술하는 것이다. 저는 어디 출신이고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무엇을 했었어요. 그런데 과거의 자신을 그렇게 서술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과 다른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나에 대한 서술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벽한 동일성을 갖고 있다고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나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단초만을 제공하지 그것으로 완벽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장 훌륭하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은 나를 외화시킨 무언가를 통해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다시 말해 외부 대상에 나를 투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이미 관찰하는 나와 투영된 나는 다른 자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외화된 나와 관찰하는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연결망은 단지 두 자아를 타자로서 배치하지 않는다. 즉 관찰하는 자아는 외화된 자아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 by | 2009/08/17 20:19 | 단상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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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외재하는 타자와의 관계를 지우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아는, 자기자신의 반응, 인상, 표상하는 방법 등에 대해 지각한 주관적 느낌을 서술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것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재단할 대상은 자아가 아닌 외부의 타자들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물론 세번째 단락에서 자아의 (변형된/달라진?) 일부로서의 외화된 자아 역시, 충분히 훌륭한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몰래 눈팅하다 갑자기 난입해서 죄송합니다만.. 흥미로운 주제라서 저도 모르게 주저리 댓글을 달아버렸네요^^;;;
어쨌든 지산 말대로 "목적 없는 자기소개서"는 없을진대, 사실 '자기소개'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자체로 어쩌면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것 이잖아. 언어로, 글로 옮기고 있다는 것 자체도 그런 측면이 있고... 그러니 나의 결론도 "그냥 대충 쓰고 빨리 자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네-_- 뭐 이미 다 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