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2일
사진과 예의
나는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항상 지니고 있다. 무엇이 좋은 사진인가를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끝도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추구하는 사진의 종류만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그 범위 내에서 좋은 사진이 무엇인지를 좀 더 자명하게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찍으려는 사진은 풍경사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의 풍경에 대한 사진이다. 한적한 자연 풍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피사체로 하는 사진을 찍으려 한다. 노동하는 인간. 거리에서 한숨쉬는 인간. 담배피우는 인간. 집회에 나온 인간. 등등. 그러나 언제나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음 한 켠을 짓누르는 부담감이 있다. 그 부담감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단적으로 말해 - 즉 가장 무규정적인 의미에서 - 사진찍는 행위는 오직 이미지의 생산이다. 사진을 찍는 자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사각형으로 고정된 이미지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카메라라는 선험적 인식틀 속에 집어넣은 시야의 광경이 이미지로 고착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을 보며 느끼는 '노동의 숭고함' 내지 '고독함' 등의 감상은 현실 그 자체, 즉 피사체의 삶에서 단순히 떠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을 찍는 자와 감상하는 자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찍는 자가 부여하는 정도가 더 큰 듯하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예전에 나는 붕어빵 장사하는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으려다가 찍지 못했던 경험(링크)이 있다. 그 광경은 매우 '예쁜' 사진을 만들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사진의 구도 자체로만 놓고 보면 말이다. 추운 겨울 해가 거의 저물어 가는 무렵,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판 뒤에서 다른 상점들의 백열등 불빛이 붕어빵 주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지체없이 카메라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단지 피사체인 인물이 카메라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나는 사진찍히기 싫어하는 나의 친구들을 내 멋대로 찍어댄다.) 어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밀면 치우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설령 치우라고 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찜찜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 찜찜함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라 생각된다. 피사체인 인물들의 삶의 무게를 사진에 담아내기엔 너무 무겁거나, 혹은 내 멋대로 재단해버리고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오직 개인적으로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학내 언론에서 잠시 활동했을 때는 이런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결코 그런 감상에 젖어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보도용 사진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지닌 채 셔터를 누를 땐 말이다. 가령 장애인 집회 사진을 찍거나 반전 시위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부담 없이 셔터를 수십 수백 번 눌러댔다. 가까이서 사람 얼굴을 찍는 것도, 단상에 거의 붙어서 셔터를 누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물론 어떤 집회인가에 따라서 때로는 함부로 찍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언론의 보도 목적이라는 공익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여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나 개인의 사진을 찍을 땐 상황이 다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무서움을 느낀다. 당신이 왜 이 사진을 찍는가, 라고 찍히는 어떤 - 그리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 사람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딱히 없다. 그냥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가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의 전부다. 애초에 내가 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사각형의 이미지로 담아내어도 되는가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초상권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진찍을 대상을 찾아다니며 마구 돌아다니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해 갑자기 이런 느낌들이 들었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까마귀나생쥐 (아 이건 금칙어..) 참새같다는 생각.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만족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삶에 이런저런 수식어들을 부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자책감.
그래서 한동안 나는 사람에게 렌즈를 들이밀지 못했다. 길가에 외롭게 나 있는 풀. 널부러진 깡통. 그런 잡다한 것들을 찍어댔다. 하지만 한계가 너무 분명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 주는 생동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길가를 걸으며 임의의 행인들에게 대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러번 혼났다. 가게의 주인이 찍지 말라고 손을 흔들거나, 심지어 나와서 뭐하는 거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일단 클레임이 들어오면 나는 그냥 도망가야 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그래서 정말 부럽다. 반드시 결과물의 차원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을까. 단지 그 사람이 철면피라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사진에 대한, 셔터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 것이다. 내가 지닌 이 강박관념의 정체를 더 정확히 해명하고 나서 해소할 수 있다면 - 반드시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 최소한 내가 사진찍는 순간마다 가슴이 옥죄는 이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덧. 아마 이 모든 생각들은 애시당초 사진찍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찍으려는 사진은 풍경사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의 풍경에 대한 사진이다. 한적한 자연 풍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피사체로 하는 사진을 찍으려 한다. 노동하는 인간. 거리에서 한숨쉬는 인간. 담배피우는 인간. 집회에 나온 인간. 등등. 그러나 언제나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음 한 켠을 짓누르는 부담감이 있다. 그 부담감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단적으로 말해 - 즉 가장 무규정적인 의미에서 - 사진찍는 행위는 오직 이미지의 생산이다. 사진을 찍는 자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사각형으로 고정된 이미지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카메라라는 선험적 인식틀 속에 집어넣은 시야의 광경이 이미지로 고착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을 보며 느끼는 '노동의 숭고함' 내지 '고독함' 등의 감상은 현실 그 자체, 즉 피사체의 삶에서 단순히 떠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을 찍는 자와 감상하는 자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찍는 자가 부여하는 정도가 더 큰 듯하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예전에 나는 붕어빵 장사하는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으려다가 찍지 못했던 경험(링크)이 있다. 그 광경은 매우 '예쁜' 사진을 만들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사진의 구도 자체로만 놓고 보면 말이다. 추운 겨울 해가 거의 저물어 가는 무렵,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판 뒤에서 다른 상점들의 백열등 불빛이 붕어빵 주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지체없이 카메라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단지 피사체인 인물이 카메라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나는 사진찍히기 싫어하는 나의 친구들을 내 멋대로 찍어댄다.) 어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밀면 치우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설령 치우라고 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찜찜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 찜찜함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라 생각된다. 피사체인 인물들의 삶의 무게를 사진에 담아내기엔 너무 무겁거나, 혹은 내 멋대로 재단해버리고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것도 오직 개인적으로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학내 언론에서 잠시 활동했을 때는 이런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결코 그런 감상에 젖어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보도용 사진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지닌 채 셔터를 누를 땐 말이다. 가령 장애인 집회 사진을 찍거나 반전 시위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부담 없이 셔터를 수십 수백 번 눌러댔다. 가까이서 사람 얼굴을 찍는 것도, 단상에 거의 붙어서 셔터를 누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물론 어떤 집회인가에 따라서 때로는 함부로 찍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언론의 보도 목적이라는 공익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여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나 개인의 사진을 찍을 땐 상황이 다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무서움을 느낀다. 당신이 왜 이 사진을 찍는가, 라고 찍히는 어떤 - 그리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 사람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딱히 없다. 그냥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가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의 전부다. 애초에 내가 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사각형의 이미지로 담아내어도 되는가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초상권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진찍을 대상을 찾아다니며 마구 돌아다니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해 갑자기 이런 느낌들이 들었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까마귀나
그래서 한동안 나는 사람에게 렌즈를 들이밀지 못했다. 길가에 외롭게 나 있는 풀. 널부러진 깡통. 그런 잡다한 것들을 찍어댔다. 하지만 한계가 너무 분명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 주는 생동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길가를 걸으며 임의의 행인들에게 대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러번 혼났다. 가게의 주인이 찍지 말라고 손을 흔들거나, 심지어 나와서 뭐하는 거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일단 클레임이 들어오면 나는 그냥 도망가야 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그래서 정말 부럽다. 반드시 결과물의 차원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을까. 단지 그 사람이 철면피라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사진에 대한, 셔터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 것이다. 내가 지닌 이 강박관념의 정체를 더 정확히 해명하고 나서 해소할 수 있다면 - 반드시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 최소한 내가 사진찍는 순간마다 가슴이 옥죄는 이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덧. 아마 이 모든 생각들은 애시당초 사진찍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by | 2009/07/22 00:50 | 단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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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앞으로 저 이름 쓸꺼야. 여기서 첨 써 본다.ㅋ
고민이 무엇인지 감이 온다.
특히 너의 카메라에 종종 찍힌 피사체로서(저 위에' 카메라를 들이밀면 치우라고 요구'하는 지인 중 나도 한 명일까?ㅋㅋ) 어떤 생각을 하고 사진을 찍는지, 정확히는 너뿐 아니라 내 주변에 사진 찍기를 '미니홈피-나의 일상'게재용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찍는 듯한 사람들의 이유는 뭘까...-사진 찍는 것이 좋아서라는 단편적인 이유 외에 - 그러니까 과연 찍히는 것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너의 고민은 창작자의 윤리?정도 되겠네.
다만 사진이라는 매체가 다른 것들에 비해 기술적인 부분에서 접근성이 쉽기에 자주 찍을 수 있고, 네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인격이 있는 한 개체이다는 점이 문제??
음... 이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_-;;
혹시 가능하다면 난 너의 창작물을 공유했으면 좋겠어. 홈피나 공식적인 루트를 말하는게 아니라 찍히는 이와 함께. 간단하게 너의 의도를 설명 아니 거기까지 아니더라도 '이러이러한 모습을 찍고 싶었다.' 정도 설명해주면 그 피사체(?)도 자신의 또 다른 모습 혹은 대상화되는 어떤 지점을 발견할 수도 있잖아. 그들에게도 자신들을 객관화 시켜볼 수 있고, 찍었다는 사실을 공유함으로서 그들도 암묵적 합의를 한 셈이니 찜찜함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단체 사진의 경우에는 잘 모르겠다;;
암튼 사진이란 , 특히 실제모습이 거의 직접적으로 노출된다는 점에서 피사체의 입장에서-초상권 운운이라기보다- 일방적이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사진 기술은 창작에 소요 시간이 비교적 짧고, 그 결과를 즉시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 제작과정(?)에 그들을 참여시키는 거지
참 방금 생각났는데 그들이 너의 사진을 보고 했던 처음 말들을 메모해서
나중에 전시회 할 때-할거지? 저 것들을 썩히겠다는 건 아닐테고, 설마 개인용으로 감상할거냐-,.-;; - 사진 제목으로 다는 건 어때?
아이디어 괜찮지!!나 천재같지 않아?^o^(학교 업무해야 되는데 니 글에 말렸다 ㅋㅋ)
찍는 이와 결과물을 공유한다, 내지 창작 의도를 설명한다, 는 것은 사실 사진 촬영 사후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테면 누군가가 클레임을 걸었을 때처럼 말이지. 왜 그렇냐면 이미 누군가를 합의 하에 모델화하려고 하면 애초에 찍으려던 자연스러운 내지 결정적인 모습이 사라져버리기 쉽거든(특히 커다란 디카 앞에서는).
그래서 사진 촬영 후 나의 생각 내지 구도를 설명해줌으로써 이 찜찜함이 해결된다면, 흠, 괜찮은 방법일 수 있겠네(아직 한 번도 그렇게 해 본적은 없지만... 왜냐하면 난 누가 왜 찍냐고 물어보면 도망쳤거든 ㄷㄷ). 다만 내가 애초에 사진기자거나 사진작가면 좀 더 자연스럽게 설명할 말들이 많을텐데, 나는 그렇게 좋은 사진가도 아니고 디자인 이론에 별 아는 바도 없어서 여전히 커다란 부담을 안고 있음 ㅠㅠ 그래 뭐 찍히기 싫다는데 찍지 말아야지 -_-..
암우튼 남이나님의 심려어린 충고 매우 고맙고, 내가 전시회 할 정도의 내공이 쌓인 건 아니어서 사진들을 어지간하면 '썩힐' 생각이고, 그래서 미나의 천재적인 제안도 아쉽지만 각하되었고, 마지막으로 미나의 학교 업무 시간을 빼앗게 된 데에 대해 유감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