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함축과 아이러니

이명박을 싫어한다는게 논리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폴 그라이스라는 인물이 언어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내가 주워듣고 본 바에 따르면, 대화 함축 개념의 파급력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화 함축Conversational Implicature'이란, 어떤 문장의 발화 u를 통해 '말해진 것'이 그 문자적 의미를 통해 주어지는 명제가 아닌 다른 명제를 가짐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격렬했던 화용론과 의미론 두 진영의 논쟁을 (표면적으로나마) 종식시키고 두 이론의 연구 영역에 경계를 그어주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보자.

A: 이명박 정부가 저소득 차상위계층 23만명에게 의료급여혜택을 중단하고 건강보험가입자로 전환시켰다는데 막상 당사자들은 빈곤층이라 돈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어서 혜택을 못 받을 수도 있대.(출처: MBC- 차상위 계층 23만 명, 건강보험 가입자로 전환)
B: 저소득층을 등쳐먹다니 이 정부는 과연 환상적이군.

  위의 대화에서 A는 이명박 정부가 저소득계층 23만명에게 돌아갈 4천여 억원의 예산을 절감시켜 부담을 떠넘겨 버렸음을 지적하였고, 여기에 대해 B는 '저소득층을 등쳐먹다니 이 정부는 과연 환상적이군.'이라고 답했다. B의 발화는, 발화된 문장의 문자적 의미 차원에서 고려한다면, (A가 언급한) 사건에 비추어 볼 때 이 정부가 환상적인 정부일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참이다. 혹은 B의 발화가 참/거짓인 명제라기보다는 정말로 저 사건을 통해 정부가 환상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감정을 표출하는 발화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경우에서든 간에, 즉 B의 발화가 단언Assertion이든 표출Expression이든지 간에 우리는 상당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누가 누군가를, 특히 강자가 약자를 등쳐먹는다는 사건은 그다지 기분좋은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며, 따라서 저러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 강자를 욕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가? B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저런 말을 한 것이 아닐까?

  그라이스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모두 합리적 행위자이다. (가령 그 누구도 "한국의 현재 대통령은 이명박이면서 이명박이 아니다."라는, 즉 "A & -A"라는 논리적 거짓인 문장을 진지하게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수행하는 언어행위도 합리적 행위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충분히' 깨닫는다면, 우리가 수행하는 언어행위, 특히 대화에는 이 대화를 지배하는 협력의 원칙과 대화의 격률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협력 원칙이란, 내가 들어와 있는 대화 상황에서 주어져 있는 대화의 목적이 요구하는 대로 대화에 기여하라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네 격률은 1) 양의 격률, 2) 질의 격률, 3) 관련성의 격률, 4) 방법의 격률이다. 간단히만 언급하면 양의 격률은 필요한 만큼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이고, 질의 격률은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격률이며, 관련성의 격률은 말 그대로 관련있는 얘기만 하라는 격률이고, 방법의 격률(들)은 명료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페이지 참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격률들 하에서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항상 지키지는 않는다. 가령 "밥 먹었어?"라고 묻자 "시험 있어."라고 대답하는 것은 밥을 먹었는가 여부와 전혀 무관한 답변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화자가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가정하며 따라서 여전히 협력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시험 있어"라는 대답은 문자적 의미로는 화자가 곧 시험을 본다는 명제를 의미하지만, 대화 상황에서 그가 함축하는 바는 "시험이 있어서 준비하느라 밥을 먹지 못했어."라는 명제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화 함축은 반드시 상황과 결부되어서만 나타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는 발화 행위 차원에서 언어의 의미를 탐구하는 화용론의 주제가 된다. 반면에 문장 의미 차원에서 언어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론은 의미론이다. 그라이스는 이렇게 해서 왜 어떤 문장의 발화가 문자적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명제를 갖게 되는가를 밝혀내었다. (그라이스가 드는 유명한 예는 다음과 같다: 학생 철수가 지도교수에게 유학 추천서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지도교수는 "철수는 글씨를 잘 씁니다."라는 한 문장만을 적었다. 이 경우 이 문장의 문자적 의미는 철수가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이지만, 이 추천서 작성의 맥락상 "철수는 재능이 없어요."라는 명제를 가질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적용해 본다면, 위에서 든 A와 B의 대화 상황에서도, 우리는 B가 반어적으로 말함으로써 "이 정부는 정말 못된 놈들이군!"이라는 함축을 가졌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상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이렇게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사람이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완전히 반대로 대답해야 될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 화자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신 화자가 그 상황에서 비유를 하고 있거나 비꼬고 있다고 판단하여 대화를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설명이 갖는 하나의 난점은, 우리가 화자의 의도 내지 생각을 알 수 있는 수단이 화자의 언어행위라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화자가 갖는 생각/의도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가 반어나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사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B는 매우 철저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라서 국가가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내지는 B가 저소득층을 최대한으로 등쳐먹는 것을 긍정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B의 대답은 사실 그의 진의를 표현한 것이지, 반어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의 대화만을 통해서는 B가 어떤 대답을 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B가 예전에 한 언어행위들을 기억해내거나 추후에 일어나는 발화들을 모아서 그가 반어법을 쓴 것인지 진담을 한 것인지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저 짤막한 대화만을 가지고 표현된 명제를 결정해야 한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B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의도와 생각들을 미리 알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말이다.

  이제 이렇게 장황한 글을 트랙백으로 단 이유를 밝히겠다. 나는 내가 트랙백을 건 글이, 아이러니인지, 진의인지, 여전히 헷갈리고 있다. 심지어 저 블로그의 주인장이 예전에 쓴 글들을 보면서도 과연 진담을 한 것일까 여전히 확신을 못 내리고 있다. 정말 진지하게 이명박 정부에 대해 반어적으로 비꼬고 있는 글들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문자적으로 표현된 의미만을 놓고 해석했을 때 도저히 화자를 '합리적 화자'로서 간주할 수가 없어서 차마 문자적 내용 그대로를 글의 주장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주인장의 머릿속에 있는 의도를 미리 알 수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저 글의 주제를 확정할 수 있을까?

by Arouet | 2009/05/15 01:36 | 잡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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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9/05/15 20:58
이 글이야말로 엄청나게 비꼬는 글로 읽히는데? ㅋ
Commented by Arouet at 2009/05/18 10:42
설마요. 전 순수하게 궁금할 뿐입니다 ㅋ
Commented by 호영 at 2009/06/19 10:38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탐구" 또는 "확실성에 관하여"를 읽어 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글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Arouet at 2009/07/01 11:57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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