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29일
도덕에 관한 회의
한 친척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 집안은 너무 도덕적이야." 이번 추석에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톡톡히 경험했다. 너무나 '도덕적'인 집안에서의 행위규범과 구조들, 그것은 나를 극심한 혼란상태에 빠뜨린다. 그러나 그것은 집안의 규범이 단지 너무나 '도덕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도덕적인 것의 성질 때문이다...
'이 집안'에는 도덕적 상대주의자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두가 자신의 도덕적 판단이 갖는 절대적 타당성과 그것의 가치우위를 굳건히 믿는다. 문제는 자신이 갖는 판단이 타인의 그것과 동일한지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만 합의가 되어있기 때문에 막상 현실에서 생겨나는 일에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나이 일흔이나 먹은 '어르신'이 자신과 대여섯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친척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기기도 하고, 아내가 아파 죽으려는데도 제대로 신경조차 쓰지 않아 (나를 비롯한) 친척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이 집안'에는 여전히 굳건한 '하나의 도덕'에 대한 믿음의 존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 이것은 근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의문 가운데 하나다. 전혀 다른 신념체계 안에 상주하던 인간들이 서로를 폭력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그것이 '폭력'이 아니라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중 하나가 도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자연법적인 도덕체계를 발견해낼 때 진정한 행위준거가 될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그것의 존재여부에 대한 회의 뿐만 아니라, 그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조차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할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집안'에 다녀온 뒤 느꼈듯이, 일원화된 도덕체계의 존재는 권위와 권력이라는 두 가지 틀을 떼어놓고 존재할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참혹하게 짓밟히는 반인륜적 의사소통체계로 직결되기 십상이다...
'이 집안'에는 도덕적 상대주의자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두가 자신의 도덕적 판단이 갖는 절대적 타당성과 그것의 가치우위를 굳건히 믿는다. 문제는 자신이 갖는 판단이 타인의 그것과 동일한지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만 합의가 되어있기 때문에 막상 현실에서 생겨나는 일에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나이 일흔이나 먹은 '어르신'이 자신과 대여섯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친척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기기도 하고, 아내가 아파 죽으려는데도 제대로 신경조차 쓰지 않아 (나를 비롯한) 친척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이 집안'에는 여전히 굳건한 '하나의 도덕'에 대한 믿음의 존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 이것은 근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의문 가운데 하나다. 전혀 다른 신념체계 안에 상주하던 인간들이 서로를 폭력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그것이 '폭력'이 아니라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중 하나가 도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자연법적인 도덕체계를 발견해낼 때 진정한 행위준거가 될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그것의 존재여부에 대한 회의 뿐만 아니라, 그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조차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할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집안'에 다녀온 뒤 느꼈듯이, 일원화된 도덕체계의 존재는 권위와 권력이라는 두 가지 틀을 떼어놓고 존재할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참혹하게 짓밟히는 반인륜적 의사소통체계로 직결되기 십상이다...
# by | 2007/09/29 12:14 | 잡담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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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으며 교육이나 계몽,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블로그 바닥에 나돌아다니는 글들도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심지어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공식적 매체에서도 이런 주장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은 스스로가 사회 문제에 대한 현명한 접근법이 아닌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사회 문제는 제도, 역사,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more
물론 그 합의란게 제대로 가능할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덕관에서 소외되는 무리도 있기 마련이고..)
도덕이란거는 어느정도 유연성을 가지는게 좋지 않은가 싶습니다.
결국 '틀린 도덕'을 비판하는것도 '인륜'이라는 이름의 합의된 도덕이라면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겠죠...
1. 모든 사람에게 그 도덕규칙을 이해시키는 방법이 없습니다.
2. 모든 사람이 그 도덕규칙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1 - 도덕규칙은 '합리적'이지 않기에 그것의 이해가능성은 낮거나 없다고 볼 수 있다.
2 - 도덕규칙에 따르는 것은 임의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우리는 도덕규칙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면 그건 '범죄'가 됩니다만, 모든 사람이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옳지 않음을 분별하고 판단하고 있으니까요.(그 판단이 물론 완벽하게 통일될 수 있는지는 더 따져볼 문제입니다만)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잠재적인 원칙들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원칙체계의 생성-인식과정, 그리고 총체적인 작동방법에 대해서는 더 엄밀한 고찰이 필요할 것 같군요.
1번 -> 합리적인 규칙이라도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2번 -> 그 도덕규칙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어렵다.
처음 문제는 정보전달의 문제이며, 두 번째 문제는 참/거짓의 문제입니다.
뭐.... 어찌되었든 우리는 열심히 생각해야겠지요 :)
2번 : 1번과 유사한 것 같네요. '합리적 규칙'이라는 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이성적 능력만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 규칙이라는 것을 암시할 겁니다. 만약 이러한 규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은 규범의 합리성과 그에 따른 판단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해야만 할 겁니다. 그래서 '임의성'이라는 전제가 붙을 수밖에 없는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