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4)

새로운 방명록입니다. 주인장에게 쓰고 싶은 말을 적어주세요.

by Arouet | 2010/10/11 18:46 | 트랙백 | 덧글(2)

밀란 쿤데라, 『농담』중

p. 73
그렇게 해서 나는 같은 부대에 배치된 다른 신병들과 함께 연병장에 서 있었다. 모두 모르는 사이였다. 서로가 다 초면이고 익명인 이런 불투명함 속에서는, 타인들에게서 거칠고 낯설기만 한 모든 것이 가차없이 발산된다. 우리를 묶어주는 단 하나의 유일한 인간적 연결 고리란, 짤막하게 서로 무어라 추측이나 해 보고 있던 불투명한 미래뿐이었다.


p. 75
그들이 우리에게 가한 인격 박탈은 처음 얼마간은 마치 안개 속에서 분간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수행한 그 비개인적 기능, 강제로 부과된 기능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표출하는 모든 것을 대체해 버렸다.


p. 80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그것이 시간의 한 양태라는 것을 잊은 채 멜로디를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때 시간을 듣게 된다. 시간 그 자체를. 나는 휴지(休止)를 살고 있었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약정된 기호에 의해 명백하게 그 길이가 한정되어 있는) 휴지가 아니라 한정이 없는 휴지를.

by Arouet | 2009/11/05 21:35 | 감상 | 트랙백 | 덧글(0)

『사진에 관하여』 by. 수잔 손택 - (1) 플라톤의 동굴에서

요약: 사진은 세계와 관계맺음이다. 사진찍음은 기존의 회화나 예술이 세계에 대해 취해왔던 태도, 즉 세계를 해석한다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행위다. 사진은 세계를 전유한다(p. 18). 세계를 수집하고, 포착하면, 그 이미지 자체로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사진찍는 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진은 과거에 대한 향수, 제약된 시공간을 지닌 여행자들의 수집욕 등에 의하여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사실 사진은 세계를 투명하게 포착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예술매체도 그러하듯이, 사진찍는 사람의 주관적 자세 - 취향, 목적, 기준 - 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 해석에 들어있는 가치는, 그 사진가가 의도하는 어떤 내용이며, 여기에 사진의 공격성이 있다. 카메라는 상황에 개입하지 않은 채 포착해내는 도구 - "상황에 개입하면 기록할 수 없고, 기록하면 상황에 개입할 수 없다"(p. 29) - 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카메라를 들이민다는 것은 그 상황을 어떤 상황으로서 기록하게끔 하는, 그리고 더욱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 의미, 특히 도덕성과 관련해서 볼 때, 사진 스스로 영향력을 지니지는 못한다. 사진 이전에 이미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어야 한다("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 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p. 41). 사진 그 자체만으로는 무력할 뿐만 아니라,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정도도 그와 유사한 이미지들이 여기저기 깔리기 시작하면서 더욱 약화된다.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서, 사진의 등장은 세계를 카메라가 수집한 대로 이해하면 되리라는 믿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p. 47). 사진이 제시하는 단편적 이미지는, 세계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제공하지 못한다. 이해는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지, 단선적으로 맺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by Arouet | 2009/11/04 12:56 | 감상 | 트랙백 | 덧글(2)

훈련소에서의 단상 # 1

적기 전에 짧은 넋두리. 훈련소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단지 먹거나 마실 것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 보급된 펜은 고장나 버려지기 일쑤였고 하루의 생각들을 정리하기에 수첩은 너무 작았으며 1주일에 두장씩 주어지는 편지봉투를 아껴쓰지 않으면 집에 편지조차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먼저 다녀온 이들에게서 듣기를, 일기장을 보급받아 그곳에 많은 이야기를 적을 수 있으리라 하였으나, 어째서인지 받지 못했고 그래서 작은 수첩에 꾸역꾸역 생각들을 새겨넣어야 했다. 잠잘 공간도 부족해 죽겠는데 글 쓸 공간마저 부족하다는 것은 정말 서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편지지 몇 장을 훔쳐 편지를 쓰는 척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는 척 하였다. 편지지도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 조교에게 걸렸다면 얼차려를 받았을 것이다.

  - 왜 우리는 극단적으로 세밀한, 혹은 일반적이고 진부한 말밖에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이 공간에 대해서.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괴로운 하루하루를 적절히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외부에서 보면 이곳은 일종의 블랙박스다. 사람이 들어갔다가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온다. 그 안에서의 모든 것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고 그 일상을 밖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침 기상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이 1분 1초 단위로 통제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런 경험을 갖지 못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저 '잘 다녀와'와 '벌써 왔냐'는 두 종류의 인사만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인사인 것은. 만약 이곳을 나간 인간들이 자신의 경험을 잘 설명할 수 있다면, 보다 더 잘 정리해서 말할 수 있다면, '군대 얘기'는 기피대상 1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년은커녕 며칠만 이곳 안에 있어도 머리가 굳어버린다.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생각은 통제 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곳을 나간 인간들은 - 심지어 이곳에서 통제는 감옥 안에서의 그것보다 괴롭다. 감옥에서는 훈련을 수시로 시키지는 않으니까 -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알지 못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오직 진부한 말들뿐이다. 자신이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를 떠오르는 대로 다 떠들어대거나, 아니면 정훈 시간에 들었던 어르신들의 일반론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곳에서의 시간은 중간에 잘려버린 필름처럼 남겨진다. 그것을 주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9. 22.

by Arouet | 2009/10/20 23:21 | 단상 | 트랙백 | 덧글(0)

2009년 10월 16일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개인의 모든 시간을 1초까지 통제하는 공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그러나 더 괴로운 사실은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에서의 내 경험들은 어떤 것이었고, 그곳을 나온다는 것이 어떤 기분이며, 지금 나의 심정이 어떠한 지를 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을 쓰는 순간 굉장히 진부하고 전형적인 레파토리로 서술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잘잘하게 쪼개어 조금씩 서술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통째로 적기에는 나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by Arouet | 2009/10/16 18:46 | 일기 | 트랙백 | 덧글(2)

방명록(3)

블로그를 폐쇄했다 열기를 반복한 무책임한 주인장입니다. 다른 블로그 사이트에서 사용법을 익히다가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서 다시 이글루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에 기존 방명록 등록시간이 지나버려서 새로운 방명록을 작성합니다. 기존 방명록과 마찬가지로 이 댓글란에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남겨주세요.

- 공지사항을 수정합니다. 기존의 이웃 분들도 새로운 공지사항을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전국언론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표현의 자유가 눈내리는 동네" 캠페인에 동참합니다. 동참하실 분은 걸어둔 링크를 따라가서 블로그 스킨을 수정하시면 됩니다.(2009. 01. 01)

by Arouet | 2009/10/11 00:00 | 트랙백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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